인사 드립니다

동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? 저는 74년에 졸업(5회)한 이광구(李珖求)라고 합니다. 졸업한 지 32년이 넘었군요. 저는 지금 바둑 관계 일을 하고 있습니다. ‘바둑 관계 일’이라고 하면, 웃으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. 바둑이 노는 거지, 일은 무슨 일. 맞습니다. 바둑은, 바둑 두면서 노는 게 맞습니다. 그런데 조금 넓게 말하자면, 바둑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, 바둑도 ‘일’이 되는 게 꽤 있습니다.

‘전문기사’가 있습니다. 기사는 ‘棋士’입니다. 전문기사는 전문적으로 바둑을 두는 사람입니다. 바둑을 두어 생활하는 사람, 바둑 두는 것이 직업인 사람입니다. 그래서 요즘은, 전문기사라는 말보다 ‘프로기사’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. 프로골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. 바둑교실 선생님들이 있습니다.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같은 데에서 바둑교실 간판은 더러 보셨을 겁니다. 바둑만 방영하는 TV도 있고, 바둑잡지도 있습니다. 바둑 전문 케이블 TV 방송은 우리나라에만, 그것도 세 개나 있습니다. ‘바둑TV’가 선두주자이고, ‘스카이’ 위성방송의 바둑, 그리고 ‘휴먼TV’ 안의 ‘바둑채널’이 그것입니다. 바둑 전문 월간잡지는 현재 ‘월간바둑’과 ‘월간바둑세계’, 두 종류가 발간되고 있습니다. 이런 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‘바둑 일’을 하는 것이지요. 그밖에 물론 기원을 운영하거나 바둑 개인지도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.

그런데 제 경우는 또 좀 다릅니다. 신문을 보시면 어느 한 귀퉁이에 바둑이 있습니다. 바둑판이 보입니다. 옆에 뭐라고 뭐라고 말을 써 놓은 것도 보입니다. 바둑판에는 흰 동그라미 검은 동그라미가 놓여 있는데, 어떤 동그라미 안에는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. 종합일간지뿐만 아니라 경제-스포츠 일간지에도 바둑은 거의 다 있습니다. 신문에 실리는 바둑은 99% 프로기사가 둔 바둑입니다. 동그라미 안의 숫자는 바둑돌이 놓여진 순서를 말합니다. 바둑 한 판이 끝나려면 보통 200개 안팎의 돌들이 놓여야 하는데, 그 조그만 사각형 바둑판 안에, 더 조그만 동그라미 안에 1부터 200까지의 숫자를 넣게 되면, 이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것이니, 바둑 한 판의 진행 과정을 몇 번으로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지요.

제가 하는 일은 ‘뭐라고 뭐라고’ 쓰는 것입니다. 프로기사가 둔 바둑을 일반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게, 신문 독자들에게, 좀 알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일입니다. ‘관전기자’라고도 하고, ‘관전필자’라고도 하고, 바둑해설가, 바둑평론가, 바둑기고가라고도 합니다.
관전(觀戰)-싸움 구경입니다. 관전 뒤에 기자가 붙습니다. 프로기사 두 사람의 대국을 구경하고, 대국의 내용, 승패의 원인, 착수의 선악, 대국 당시의 분위기, 바둑이 끝난 뒤 대국자가 말하는 대국 소감, 대국 당시 다른 프로기사들이 다른 장소에서 검토했던 내용… 그런 것들을 취합-정리해서 글로 옮긴 것, 그게 관전기이고, 관전기를 쓰는 사람이기에 관전기자라 하는 것 같습니다. 바둑의 ‘종군기자’라고나 할까요. 기자? 엥. 기자하고는 좀 다르지 않으냐.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. 그런 사람들은 ‘관전필자’로 하라고 합니다. 뭐, 상관이 없습니다. 기자나, 필자나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?

저는 대학 졸업 후 종합일간지의 기자로 잠깐 있다가 1980년 9월에 우연한 기회로 ‘월간바둑’ 기자가 되었습니다. 83년에 운 좋게 편집장이 되어 89년까지 일했습니다. 월간바둑 편집장을 그만두기 직전인 88년 12월부터 조선일보의 바둑란을 맡아 기왕전(조선일보가 주최하는 프로 바둑대회)의 관전기를 쓰기 시작해 1997년 4월까지 그 일을 했습니다. 기왕전은 1996년에 'LG배 세계 기왕전‘으로 발전되었지요.
198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간조선에 매주 ‘이광구 바둑칼럼’을 연재했고 1990년 시즌에는 국내 최초의 세계바둑대회인 ‘동양증권배’의 관전기를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했습니다. 그리고 1990년부터 약 2년 동안은 스포츠조선에 ‘이광구의 바둑이야기’를 연재했습니다. ‘바둑이야기’는 바둑알맹이가 없는 글이었습니다. 바둑과 바둑계의 역사, 일화-비화 등을 다룬 것이었는데, 이전에도 그런 종류의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, 본격-장기 연재로는 아마 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.

1992년에 국내 최초로 바둑전문주간지, ‘주간바둑신문’이 창간되었습니다. 저는 창간 멤버로 편집국장을 맡았습니다. 주간바둑신문은 이후 휴간-재창간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, 그때마다 사장도 바뀌곤 했는데, 결국 살아남지를 못하고, 2004년 11월이 마지막이었습니다. 그때 휴간되고 아직은 소식이 없습니다. 저는 전부 관여를 했고, 그게 지금 큰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. 개인적으로, 경제적으로 손실을 본 것도 상당하거니와, 주간신문의 편집-제작 판매에 동참했던 여러 분들, 그리고 독자들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. 그 빚을 갚을 기회가 오기를 바라지만, 과연 어떨는지.

그밖에 각종 매체에 바둑 글을 기고했습니다. 그게 이제 26년째입니다. 사회생활 전부를 바둑 글을 쓰면서 보낸 셈입니다. 매체의 다양함과 원고 분량의 총합으로는 저도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. 우리나라에는 또 대학에 바둑학과가 있다는 것, 아시지요? 명지대학교 예체능대학에 바둑학과가 있습니다. 1997년에 개설되었으니 어느덧 10년입니다. 저는 초창기 몇 학기 학부에서 바둑사를 강의했고, 지난 학기에는 바둑학과 대학원에서 ‘바둑평론/기사론’을 강의했습니다.

‘바둑평론가’ ‘바둑해설가’라는 말은 아마 제가 처음 들었을 것입니다. 1985년에, 주간조선에 칼럼을 시작할 때, 주간조선 편집국에서 달아 준 명함입니다. 기왕전 관전기를 시작할 때는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‘바둑해설가’라는 명함을 달아 주었습니다. 이전에는 바둑란 글 끝에 그냥 필자의 이름 혹은 필자의 아호(雅號)나 필명만 쓰는 것이 보통이었는데, 그건 싱거우니 뭘 하나 붙이는 게 좋지 않으냐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.

그러나 실제 제 바둑 실력은 내 놓을 게 못 됩니다. 흔히 기원에서 말하는 1급 정도일 겁니다. 그것도 센 1급이 아니라, 중간 정도,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‘표준 1급’ 정도일 겁니다. 요즘은 인터넷 바둑이 성행하지요? 인터넷 바둑 사이트 기준으로 말하자면, 사이버오로-타이젬-대쉬바둑에서 7단으로 둡니다. 타이젬에는 8-9단도 많지요. 타이젬 9단이라면 이미 평범한 아마추어는 아닙니다. 프로이거나 한국기원 연구생이거나, 그렇다고 합니다. 그렇다면, 7단이면 센 것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,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, 같은 7단이라도 여러 층이기 때문입니다. 그리고 저는 7단에서 가끔 6단으로 떨어지기도 하는데, 떨어지면 상대를 골라 열심히 두어 7단으로 올려놓고, 그 다음에는 몸을 사리는 그런 부류입니다. 인터넷 바둑인데 진다고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, 익명이어서 명예에 관계되는 것도 아닌데,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떠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, 제 경우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일단 지면 약이 오르고 열을 받습니다. 프로기사는 아니지만, 그래도 바둑으로 밥을 먹고 있는데, 바둑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지면 창피한 것 아니냐, 그런 자격지심 때문일 겁니다.

이 정도면 대충 제 소개는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. 너무 장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. 그런데 쓰다 보니, 이건 정말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. 26년을 써 온 글이지만, 이건 다른 글과 달리, 동문 여러분께 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. 제 자신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해 본 적은 없거든요. 목이 메곤 합니다. 바둑으로 살아왔다고는 하나,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이 없어, 소개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부끄럽고, 그렇게 보내 버린 세월에 대한 회환이 피어나 그런 것 같습니다. 50대 초반이면, 요즘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닙니다. 그러나 젊은 나이는 더욱 아닙니다. ‘신일’ 동산을 떠난 지 34년, 그 동안 나는 무얼 했던가? 나는 왜 내 놓을 게 없는가? 그런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. 그게 아쉽고, 서러워 목이 멥니다.

2회 이해범 선배님, 4회 이자희 선배님, 31회 조경진 후배님께서 바둑에 관한 글을 써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, 처음엔 너무 부담스러웠지만, 너무 감사하기도 했습니다. 바둑에 관한 글을 써 보겠습니다. 바둑계에서 일하면서 제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을 써 보겠습니다. 선후배 동문 여러분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.